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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신간] 일송 윤덕선 평전

한국 의학계의 숨은 거인 ‘일송 윤덕선’ 삶을 재조명



한림대학교와 한림성심대학교, 한림대학교의료원의 설립자 일송(一松) 윤덕선(尹德善) 박사의 서거 20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정리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일송기념사업회에서 『일송 윤덕선 평전』을 출간했다.

1921년에 태어나 일본인에게 고개숙이지 않고 살기 위해 의학도의 길을 택한 일송은 백병원, 가톨릭 의과대학과 성모병원, 필동성심병원을 거치며 외과의사이자 교육자로서 비범한 성공을 이뤘다.

일송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강성심병원 설립을 시작으로 전문 의료 경영인의 길에 들어서 동산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 춘천성심병원, 강동성심병원을 차례로 설립한다. 이 병원들은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졌고, 병원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의 공공재라는 그의 신념에 따라 지역의료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또한 일송은 진료와 교육, 연구의 연계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림대학교를 설립하고 춘천간호전문대학(현 한림성심대학교)을 인수해 인문적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지식인, 전문가 양성에 노력했다. 

한림대학교가 개교하면서 일송이 세운 병원들은 대학의 부속병원이 되었고, 현재 한림대학교의료원은 한림대학교성심병원과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등 6개 의료기관, 총 4000병상으로 운영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의료기관이다. 

이렇듯 한 사람이 이루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일들을 해내며 한국 현대사의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 온 일송의 삶을 후학들이 차곡차곡 기록하여 그의 평전을 완성했다. 개인의 안위와 성공을 지상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오늘날, 의료라는 도구를 이용해 민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한 일송의 일대기는 비범한 개인의 성공담에 그치지 않고 읽는 이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일으킨다. 

한국 의학계의 주춧돌 : 병원 경영의 선구자

일송은 평생 의사의 길을 걸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공대 진학을 고려하였으나 “일제의 압제하에서 일본 사람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 직업은 의사밖에 없다”라며 의대 진학을 강하게 권하는 부친의 뜻에 따라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진학했고, 그 길의 시작이 되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일송은 당대 제일의 외과 의사라고 일컬어지던 백인제 박사의 지도 아래 새벽부터 밤까지 회진, 수술, 당직이 이어지는 고된 수련기를 거치며 외과의로 성장했다. 한국전쟁기에 백병원 외과에 근무하던 그는 약 1년간 미군 야전병원에 출퇴근하며 임상병리와 보존혈액 기술을 배워 백병원에 우리나라 최초로 혈액원을 창설했다. 미군 병원에 다니며 맺은 인연을 통해 2년간 미국에서 유학한 일송은 1956년에 성신대학 의학부(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부임하여 10여 년 동안 가톨릭 의대와 부속 성모병원을 이끌며 학교와 병원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발전의 와중에 빚어진 갈등으로 인해 일송은 가톨릭 의대를 그만두고, 함께 사표를 낸 13명의 교수들과 연구와 교육, 진료를 통한 사회봉사를 목표로 1968년 한국의과학연구소라는 사단법인을 결성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종합병원인 필동성심병원을 부속병원으로 설립했다. 개원 초부터 환자가 몰려 병원이 큰 성공을 이루자 일송은 새 병원 설립을 모색하였다. 

일송은 소외되고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지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영등포 지역에 병원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대부분의 의사들이 반대해 거의 독자적으로 일을 추진해 1971년 첫 개인 종합병원인 한강성심병원을 개원하였다. 개원에 앞서 의과대학을 세우고자 하는 중앙대학교의 제안에 따라 필동성심병원과 한강성심병원은 중앙대 의과대학 부속 제1병원, 제2병원으로 개편하였고, 일송은 중앙대 의무원 초대 원장이 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의료법 개정에 따라 일송이 성심중앙유지재단이라는 의료법인을 만들면서 중
앙대와의 인연이 끝나고 대학 부속병원으로 운영되었지만 사실상 개인 병원이었던 한강성심병원은 재단 부설 병원으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일송이 이사장으로 있던 성심중앙유지재단은 병원을 계속 확장해 1977년에는 서울동산병원을 인수하여 동산성심병원을 개원한 데 이어 강남성심병원(1980), 춘천성심병원(1984), 강동성심병원(1986)을 차례로 개원하였고, “환자가 많은 곳에 병원이 찾아가야 한다”라는 일송의 소신은 병원 건립의 기본 방침으로 계속 이어졌다. 

한국 현대 의료인 가운데 일송처럼 많은 병원을 설립하고 성공으로 이끈 이는 없었다. 일송은 갈등과 시련이 있을 때마다 기존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 믿을 수 없는 성공 신화를 이루었고, 많은 병원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현대 의료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는 병원 경영의 귀재, ‘병원 왕’이라 불렸다. 하지만 일송은 병원 재벌이라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했으며 병원을 개인 소유로 두지 않고 재단을 설립해 운영했다. 일송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병원은 사기업이 아니고, 병원은 국민의 것이며, 경영자는 관리자”라거나 “병원을 해서 돈을 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병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훌륭히 키우겠다고 결심하였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송은 학창 시절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땅에 묻혀서 주춧돌이 되어라. 외부에 나서지 마라. 다른 사람을 내세우고 너는 뒤에서 뒷받침을 해라.”라는 좌우명에 자신을 비추며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1996년 7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기까지 일송의 삶이 차곡차곡 기록된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우리나라에는 지도자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지도자가 없다기보다는 땅에 묻힐 주춧돌 노릇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위에 튼튼한 국가를 세울 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 좌우명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지키며 살아왔다.”라는 일송의 호언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연보 요약]
1921년 1월 11일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출생.
1933년 봄 광량만공립보통학교 졸업.
1938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1942년 3월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
1942년~1945년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 외과 조수, 백병원 외과 수련.
1945년 초~1948년 백병원 퇴직, 고향 인근 용강온천 지역에서 성심의원 운영.
1948년 6월~1950년 6월 충청남도 홍성에서 성심의원 운영.
1951년 3월~1954년 6월 백병원 외과 근무.
1954년 8월~1956년 8월 미국 코네티컷 주 브리지포트병원 유학.
1956년 8월 성신대학 의학부(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부교수 부임.
1957년 5월~1960년 9월 성신대학 외과학 주임교수 및 교무주임.
1958년 8월 전남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
1960년 10월~1963년 2월 가톨릭대학 의학부 부학장 겸 동 대학 부속 성모병원 부원장.
1962년 2월~1967년 9월 가톨릭중앙의료원 초대2대 의무원장.
1964년~1966년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1964년~1971년 대한병원협회 이사.
1967년~1996년 3월 미국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장학위원회 한국 지부 사무총장.
1968년 6월~1971년 11월 필동성심병원 원장.
       6월~1974년 6월 한국의과학연구소 이사장.
1969년 4월 필동 한국의과학연구소에 맹인점자도서실 설립.
1969년~1970년 대한외과학회 회장.
       ~197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 회장.
1970년~1974년 중앙대학교 의무원 초대 원장.
1971년 12월 10일 한강성심병원 설립.
1972년~1976년 한국의학도서관협의회 회장.
1974년 4월 의료법인 성심중앙유지재단 설립, 성심중앙유지재단 이사장 취임.
1975년 2월 18일 성심자선병원 설립.
1976년 4월~1978년 7월 미국령 괌의 마리아나의료원 부이사장.
1977년 1월 서울 청량리 서울동산병원 인수, 동산성심병원 개원. 인간과학연구소 설립.
1979년 가톨릭맹인선교회 후원회장.
1980년 1월 11일 강남성심병원 설립.
       2월 서울보건연구회 결성.
1981년 2월~1989년 학교법인 일송학원 이사장.
       12월 신림복지관 설립.
1982년 3월 한림대학 개교. 
       4월 제10회 보건의 날 국민포장 수상.
1983년 3월 춘천간호전문대학(현 한림성심대학교) 인수.
       4월 성심의료윤리회 창립.
1984년 12월 10일 춘천성심병원 개원.
       10월 22일 강동성심병원 개원.
1988년 8월 강원도 장애인복지관 설립.
       11월~1990년 10월 평양고보 동문회장.
1989년 11월~1996년 일송학원 명예 이사장.
1990년 1월 한림과학원 창설.
1992년 10월 성심복지관(봉천사회복지상담소) 개관.
1996년 3월 10일 제주도에서 귀천.
       3월 14일 영결식 거행, 정부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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