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2 (일)

  • 맑음동두천 -0.5℃
  • 맑음강릉 3.2℃
  • 맑음서울 0.5℃
  • 맑음대전 2.1℃
  • 맑음대구 2.5℃
  • 맑음울산 3.6℃
  • 맑음광주 3.0℃
  • 맑음부산 7.0℃
  • 구름많음고창 2.4℃
  • 흐림제주 5.8℃
  • 맑음강화 0.0℃
  • 맑음보은 0.3℃
  • 맑음금산 1.2℃
  • 맑음강진군 3.5℃
  • 맑음경주시 3.4℃
  • 맑음거제 5.1℃
기상청 제공

칼럼

[성명서]조현병 환우 살해한 친모 사건 관련한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의 입장

2020년 11월 10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2020년 5월에 일어났고, 최근의 판결로 인해 알려진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서 사회적인 해결책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중학생 시절 조현병을 앓기 시작해 입원과 통원을 반복하면서도 병식이 생기지 않아 힘들던 환자가 집에서 가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3년 넘게 조현병에 걸린 딸을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어머니가 친딸의 병이 점점 깊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딸은 세상에 없고, 어머니는 징역4년을 선고받았고, 아버지는 집에 홀로 남았습니다. 마치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가족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전국의 많은 정신질환 환우와 그 가족들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많은 장애인 부모님들이 눈물 어린 바램을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부모 아니면 돌볼 사람이 없는 현실에 대한 사무치는 걱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생사의 때를 정함에 있어 우리가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힘들다고 자기를 해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순간적 판단이 옳지 않듯이, 나 아니면 돌볼 사람이 없다고 살해라는 수단을 택하는 것도 생명존중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한 번쯤 고민해볼 것은 피붙이 간에 고귀한 생명존중 원칙을 거스를 정도로 힘든 현실입니다. 그러한 현실이 존재한다면 개인의 책임으로 국한 시키기 보다는 사회의 책임을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우를 돌보는 것이 온전히 가족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사회 공통의 책임이라는 인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조현병의 경우 치매보다 더 유병 기간, 즉 병을 앓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그만큼 가족들의 고통도 더 큽니다. 치매에 대해서는 가족 부양의 부담을 덜 수 있는 국가책임제를 시작하며 장기노인요양제도 등의 제도로 인해서 그나마 가족들이 도움 받고 있습니다. 주요 정신질환이나 자폐성장애 지적장애 등의 정신 및 뇌기능 관련되어 오랜 기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도 국가에서 책임질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됩니다. 오랫동안 투약과 입퇴원의 반복 등으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하는 가족들에게 국가 차원에서 돌봄 인력이나 외래치료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탈원화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환우와 가족들이 없는지 재고해봐야 합니다. 병원 중심이 아니라 지역사회 중심으로 정신질환을 겪는 환우들을 관리할 수 있는 탈원화 및 탈시설화는 물론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우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그런 사회를 꿈꿉니다. 정신병동에서 환자들을 탄압하고 인권을 말살하는 이미지보다는 따뜻한 상담실에서 안전하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꿈이 현실이 되려면, 실제로 심한 환자들이나 가벼운 환자들이나 자기에게 맞는 적절한 환경에서 치료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식이 없는 것은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등 정신질환의 중요한 증상입니다. 자기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첫 자체가 증상일 수 있는데, 병식이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증상이 호전되어야 합니다. 급성기의 전문적 치료, 만성기의 상황에 맞는 돌봄, 모두 인권 등의 이유를 들어 제대로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환우와 가족에 대한 생명 존중이겠습니까. 일시적으로 단순히 자유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방치하는 것이 진정 환우들을 위하는 길일까요? 오래 오래 삶의 질을 높이고 질환에 대해서 환우와 가족 모두가 지속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방안을 사회에서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인권 존중이 아닐까 합니다.

 
환우와 가족들의 심리적 재활 또한 사회적으로 관심가져야 할 부분입니다. 이번 사건에서처럼 10대에 발병하여 지속적으로 투병을 할 경우 환우와 가족 모두 지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정신질환 뿐만 아니라 중증질환, 희귀난치병, 신체장애 대해서도 장기간 병과 함께 살아가며 환우와 가족들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탈진에 대해서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마련이 시급합니다. 또한 장애인과 가족들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의 협력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23년의 투병 생활 끝에 한 가정이 무너진 이번 가슴아픈 사건은 급진적 탈원화, 정신질환 환우에 대한 가족들의 부양 부담이 오랜 시간 곪아서 터진 결과이며 향후 국가적으로 정신질환 관리 시스템의 필요성을 천명합니다. 이를 안전하고 현실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와의 협력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2020년 11월 10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 김동욱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