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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의협, "젊은 의사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 대국민 호소

2020.8.7.

- 전공의는 이 땅 의료의 '연료'... 모순투성이 제도 유지의 핵심
- 정부의 의사 증원안, 전문인력의 도구적 활용에만 치중된 의사양성 모순 고착화시킬 것
- 파업 상황에서도 유지되는 필수의료, '버팀목' 성격 보여줘... 정당한 보상 아끼지 말아야







8월 7일, 오늘 전국의 젊은 의사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들 전공의들은 전국 200여개 병원에서 전공과목을 수련받고 있는 의사들입니다. 전공의의 주당 10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노동은 오래 전부터 사회문제로 다루어졌습니다. 2015년 전공의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전공의법이 제정됨으로써 주당 근무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하는 조치가 이루어졌으나 이 역시도 다른 직종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상식적일만큼 긴 것이 사실입니다.

혹자는 전공의의 근무시간이 긴 이유를 의사수의 부족에서 찾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병원이 충분한 의사 인력을 고용하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교육과 수련을 받는 입장의 전공의는 병원과 상급자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있으며 불합리한 일이 있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는 철저한 '을'의 입장입니다. 그렇기에 상식적인 환경이라면 의사 2-3명이 해야 할 일을 전공의 한명이 해내는 믿기 힘든 환경이 수 십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져 온 것에는 의사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의사들 대부분이 젊은 시절, 전공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가장 열정적이고 순수한 한때를 병원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스스로에 대한 투자와 의사로서의 본분이라 생각하고 이를 미덕처럼 여겨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이 길의 끝에 눈부신 미래와 영광이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젊음을 '헌신'하고 나면 전문의 자격증 한장을 받아 OECD 최저수준의 의료수가,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이 경쟁하는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무한경쟁이 기다리는 '강호'로 던져져 각자도생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보통 의사의 일생입니다.

그 과정에서 병원은, 대한민국 거의 대부분 의사의 젊은 한때를 마치 일회용 건전지 마냥 '연료'로 삼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기형적인 몸집불리기를 통해 저수가로 대표되는 모순투성이의 의료제도를 아슬아슬하게 우회(迂廻)하며 생존해 왔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의사양성의 과정이, 오직 대형병원의 생존을 위한 도구적 활용에 맞추어져 있는 모순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를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묵인하고 방조하면서 복마전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의료의 장점인, 적은 비용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이른바 '가성비'의 열매만을 취해온, 최대의 수혜자였습니다.

오늘 젊은 의사들이 분개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취약지역과 비인기필수분야의 의사인력이 부족한 까닭은, 국가적인 의사 양성과정이 오직 의사를 도구처럼 활용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사회의 유지를 위하여 필수적인 분야에 그에 걸맞은 지원과 대우를 하기보다, 그저 일회용 건전지로 잠시 활용하기 위한, 얄팍한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모순을 개선하기 보다는 오히려 강화하고 고착화시킬 것이 분명한 하책 가운데 하책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의사들의 파업에, 모든 의사들은 모든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젊은 의사들이 비운 자리는 교수와 전임의(전문의)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이 환자와 국민에 대한 송구스러움으로 움츠려들지 않고 당당하게 목소리 낼 수 있도록 조금의 공백도 생기지 않도록 오늘 하루는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분만과 응급의료, 중환자치료 등의 필수분야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정부가 시키거나 병원의 방침 때문이 아니라, 의사들 스스로 우리 사회의 버팀목인 필수의료 기능은, 설령 우리가 파업에 나서는 순간에도 유지해야만 한다고 누구보다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다른 분야에는 없는 의료의 특수성이며 우리 사회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서만큼 절대로 정당한 보상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가장 열정적이고 순수하며 때 묻지 않은 청년들의 외침입니다. 의사는 기득권이며 의사의 단체행동은 집단이기주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편견을 잠시 접어두시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일하기에도 바쁜 젊은 의사들이 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을 보아주십시오. 대한민국 13만 의사가 간절하게 호소드립니다.


2020.8.7.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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