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올해 초부터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을 시작으로 5개월째 끊임없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산발적으로 발생하던 코로나19 확진자는 2월 중순부터 한 달여의 기간 동안 대구 및 경북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가 현재는 감소하였으나, 다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2차 대유행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서 많이 언급되었지만 대구 및 경북지역의 의료진들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열악한 지원 등으로 인해 번아웃(burn-out) 상태에 빠졌고, 이러한 의료진들의 번아웃 문제는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서 점차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번아웃을 경험할 정도로 힘들게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현 상황은 의료진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부 대형병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의료기관들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고, 이는 국가지정격리병상을 운영하여 코로나19 입원환자를 치료하는 병원, 코로나19 선별진료소와 호흡기 안심 진료소를 운영하는 병원 등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하는 병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의료기관들의 경영난으로 인해 코로나19 환자 검사 및 치료에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의료진이라고 하더라도 위험한 검체 채취 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러한 열악한 환경은 앞으로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종별에 관계없이 의료기관 방문자 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한 경영 악화는 예상이 되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입원 환자를 치료하거나 선별진료소 운영을 통해 코로나19 의심자들에 대한 검사 및 진료를 하면서 비교적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는 병원들마저도 경영 악화가 일반 병원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코로나19 환자 진료에는 훨씬 많은 인력과 장비 및 시설이 필요하여 비용이 많이 드는 데에 반해서, 받을 수 있는 수가는 1만원 전후의 진찰료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에서는 ‘국민안심병원’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이에 선정된 병원의 경우는 코로나19 환자 관련 진찰 시 2만 원 가량의 감염예방 관리료만을 더 받을 수 있게 해놓았다.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설 등을 고려했을 때 이 금액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마저도 국민안심병원에 지정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 정부는 감염예방 관리료 이외에 선별진료소 격리 관리료도 산정해 놓았으나 이를 만족하는 시설 및 환자 기준이 까다롭고 한정되어 있어 대부분의 선별진료소에서는 격리 관리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국민안심병원은 유지 조건이 까다롭고,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 현재 안심병원을 반납하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추가적인 수가를 받는다고 알려진 국민안심병원 지정 의료기관의 상황도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국민안심병원에 지정되지 않은 의료기관의 상황은 더욱 열악할 것이다. 15만 원 가량의 코로나19 검사 비용의 경우도 자체 검사를 시행하는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하고는 외부 수탁업체에 검사를 전량 의뢰하고 있는데, 현재 수가 구조상 의료기관의 검체 채취 및 관리에 대한 행위료가 따로 산정되어 있지 않아서 검체를 외부 수탁업체로 보내는 의료기관의 경우에는 아무런 수익이 발생하고 있지 않다.
코로나19 환자의 진료 및 검사를 시행하는 의료진들은 자신도 감염될 수 있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환자 진료와 검사에는 위험수당을 더해서 수가 가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코로나19 호흡기 검체와 같은 고위험 검체 채취와 관리에 대한 행위 수가 신설이 이루어져서, 검사를 외부 수탁업체에 맡기는 의료기관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19 관련 진료를 하는 의료기관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1차 의료기관이나 중소병원들도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1차 의료기관과 중소병원의 경영난으로 인해 많은 보건의료인들이 무급휴직이나 실직 상태에 있고, 이러한 상황은 해당 의료기관들의 경영난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좋아질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결국 많은 1차 의료기관과 중소병원들의 줄도산은 불가피하고, 이는 보건의료인들의 실업률 증가와 지역사회 보건의료시스템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실업률 감소와 지역사회 보건의료시스템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라도 경영난에 시달리는 의료기관들에 대한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얼마 전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탈진이 이어지자, 정부는 뒤늦게 선별진료소 에어컨 설지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미 이러한 문제는 더위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제기되어 정부에 지원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관련 언론 보도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안이한 대응이 반복되면 의료진들은 더 이상 감염병 확산의 최일선에서 일할 수 없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의료진과 의료기관들에게 봉사와 희생만을 강요하는 시스템은 유지될 수 없다.
이에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정부에 코로나19와 관련된 의료 행위에 대해 정당한 수가를 지급하고,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보건의료인들과 의료기관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의료진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덕분에 챌린지’가 아니라 현실적인 지원과 보상이라는 점을 정부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2020년 6월 16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전국의사노조준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