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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부는 허위 사실에 근거하여 외교문서를 작성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즉각 파면 및 처벌하고, 부작용만 양산하면서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친한방 정책을 폐기하라

2020년 2월 17일



- 요약 -

2018년 10월 한의대의 세계의학교육기관 목록(WDMS) 등재를 위해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의사는 대한민국에서 의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서신까지 작성해 줬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본 회)는 해당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2018년 11월 6일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정보공개를 거부하였고, 이의신청에도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아 본 회는 2018년 12월 24일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과 2심 모두에서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본 회의 승소로 보건복지부는 해당 서신을 공개하였다. 

공개된 서신을 보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세계의학교육협회(WFME)에 서신을 보낸 것은 2018년 6월 7일이었고, 서신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한의대를 WDMS에 등재시켜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서신의 서두 부분에는 2010년에 보건복지부가 세계의학교육협회에 한의사가 의사의 한 종류로 분류된다는 내용의 문서를 전달한 바 있다고 되어 있어 이전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한의사가 의사의 한 종류라는 허위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점으로, 이는 의료법 제2조의 의료인 면허 범위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해당 서신에는 한의사를 ‘Medical Doctor of Korean Medicine'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Medical Doctor(MD)는 국제적으로 의사를 지칭하는 단어로서 한의사를 Medical Doctor라고 표현하는 것도 허위 내용이다.
서신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의대의 WDMS 등재를 4가지 이유를 들어 부탁하고 있는데 첫째는 한의사가 독립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의사(legitimate medical doctors)이고, 한의대 커리큘럼은 과학의 원칙에 기초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한의사는 한의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교육받고 있고, 한방 의료만을 독립적으로 실행할 수 있으므로, 서신의 해당 표현은 허위 사실이다. 둘째는 한의사 면허를 정부가 관리한다는 점과 한의사가 일차 의료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출생증명서 등의 정식 의료 서류를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군의관이나 지역 보건소의 공중보건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유 역시 전혀 설득력이 없고, 왜곡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셋째는 중의대는 WDMS에 등재가 되어 있는데 한의대가 WDMS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서신이 발송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2019년 1월에 중의대도 WDMS에서 퇴출 되어 주장의 근거가 사라졌다. 넷째는 한의학 교수들과 연구원들이 증거에 입각한 의학의 원칙에 따라 논문을 발표해 왔다는 점이었는데, 정부가 연구 용역을 준 경우에도 한의학 교수나 연구자들은 증거에 입각한 의학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서신의 말미에 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WFME에 전달한 것이 아니라 한의계의 요구와 입장을 외교문서로 전달한 것임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이는 보건복지부의 노골적인 한방 감싸기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해당 서신의 내용은 2016년 12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미주지역 한방 의료기관 진출 전략 개발’ 보고서에 있는 한의사들의 미주지역 진출을 위한 중장기적인 과제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결국 한의사들의 미주 지역 진출을 위해서 정부가 무리하게 나선 것이라 볼 수 있다. 한의사들이 MD 명칭을 사용하고, WDMS에 한의대를 등재시키려는 진정한 목적은 아마도 미주지역 진출 목적뿐만 아니라 한방의 의과 영역 침탈의 명분으로 삼기 위함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보았을 때, 보건복지부도 한방의 의과 영역 침탈을 노골적으로 지원할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한의학의 과학적인 검증을 통한 퇴출 작업을 시작하면서 의료에 있어서 국제적인 흐름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시점에 보건복지부 장관이란 사람이 국내 의료제도의 근간인 의료 이원화를 부정하면서까지 허위 사실에 근거한 서신을 세계의학교육협회에 보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에 본 회는 정부에 허위 사실에 근거하여 외교문서를 작성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즉각 파면 및 처벌하고, 부작용만 양산하면서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친한방 정책을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본 회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 본문 -

1. 문제의 발단과 서신 공개 소송까지의 경과

2018년 10월 한 토론회에서 당시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 부회장은 한의대의 세계의학교육기관 목록 (World Directory of Medical Schools, WDMS) 등재를 위해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의사는 대한민국에서 의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서신까지 작성해 줬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에 본 회는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의료법에 규정된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이기에 심각한 문제로 판단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냈다는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2018년 11월 6일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정보공개를 거부하였고, 이의신청에도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아 본 회는 2018년 12월 24일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2019년 9월 5일 1심 재판부는 해당 서신의 공개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1항제2호(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 및 제7호(법인 등 단체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보건복지부가 내린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 내림으로써 원고인 본 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보공개거부처분을 내렸던 명분이 1심에서 완전히 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승산 없는 항소를 결정하였고 본 회는 항소심에 응하였다. 그리고 지난 12월 12일 항소심을 맡았던 서울고등법원 제3행정부는 피고가 원고에게 내린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한다는 1심 판결이 정당하므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판결 내림으로써 다시 한번 본 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1심과 2심 모두에서 자신들의 주장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보건복지부는 더 이상 항소하지 않고 판결을 받아들였다.

당시 본 회는 보도자료를 통해서 항소심 승소 소식을 알리면서, 보건복지부가 항소까지 하면서 서신 공개를 꺼리는 이유를 예상한 바 있다. 당시 본 회는 항소심 승소를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보건복지부가 항소까지 하면서 서신 공개를 꺼리는 이유를 아마도 한의사를 의사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는 직역으로 소개하고, 그 근거도 한방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어 서신이 공개되었을 때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런데 공개한 서신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본 회가 예상한 내용이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 공개된 보건복지부 장관 서신의 문제점

① 서두에서부터 드러나는 보건복지부의 허위 내용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세계의학교육협회(World Federation of Medical Education, WFME)에 서신을 보낸 것은 2018년 6월 7일이었고, 서신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한의대를 WDMS에 등재시켜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서신에서 언급된 한의대가 WDMS에 등재되어야 하는 이유는 논리가 빈약할 뿐만 아니라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허위 사실에 근거해서 작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장관의 간절한 부탁이 담긴 서신을 보냈음에도 한의대가 WDMS에 등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세계의학교육협회도 해당 서신의 내용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당 서신의 내용이 얼마나 문제가 많기에 세계의학교육협회가 서신을 받고도 한의대의 WDMS 등재를 거부하였고, 또 본 회의 정보공개청구를 보건복지부가 거부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서신의 서두 부분에는 2010년에 보건복지부가 세계의학교육협회에 한의사가 의사의 한 종류로 분류된다는 내용의 문서를 전달한 바 있다고 되어 있다. (On July-28th, 2010, the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of Korea sent a document to the effect that the medical doctor of Korean Medicine is classified as a kind of medical doctor to the secretariat of WHO AVICENNA) 이는 결국 2010년에도 이번 서신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서신을 보건복지부가 보낸 적이 있음을 자인하고 있는 것으로, 그 내용도 한의사가 의사의 한 종류라는 허위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법 제2조를 보면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되어 있고,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라고 되어있다. 법적으로 의사와 한의사는 명백히 구분되는 일을 하는 다른 직종이고, 자신의 면허된 역할을 벗어나는 행위는 할 수 없음이 법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한의사는 의사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므로 한의사가 의사의 한 종류라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한 허위 사실이다. 보건복지부가 한의사를 마치 의사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의도는 한의사를 표현한 단어에서도 알 수 있다. 한의사는 한방 의료를 담당하기 때문에 ‘Doctor of Korean Medicine’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해당 서신에는 한의사를 ‘Medical Doctor of Korean Medicine'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Medical Doctor(MD)는 국제적으로 의사를 지칭하는 단어로서 한의사를 Medical Doctor라고 표현하는 것은, 의사와 한의사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때문에 의료법에 규정된 의료인의 면허체계를 정부가 스스로 부정하는 행태이다.

② 보건복지부 장관이 밝힌 한의대가 WDMS에 등재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

서신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의대의 WDMS 등재를 4가지 이유를 들어 부탁하고 있다. 첫째는 한의사는 의학 원리에 기초하여 교육과 훈련을 받는 합법적인 의사(legitimate medical doctors)이고, 6년으로 이루어진 한의과 대학 커리큘럼은 과학의 원칙(principles of sound science)에 기초하며, 한의사는 이 커리큘럼을 마쳐야 독립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정식 의사자격(legitimate medical doctor licensed to practice medicine independently)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한의사는 의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교육 및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교육 및 훈련을 받고 있다. 한의학의 원리와 의학의 원리는 완전히 다른 것인데 마치 한의학이 의학과 같은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자체가 허위 사실이다. 의료를 독립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자격은 의사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의사는 한방 의료만을 독립적으로 실행할 수 있으므로, 한의사가 의료를 독립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표현 역시도 허위 사실이다.

한의과 대학의 교육과정이 과학 원리에 기초하여 짜여 있다는 말도 거짓인데, 이는 실제 한의대의 커리큘럼을 검색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국내 최고의 한의대라고 알려진 K한의대의 커리큘럼을 보면, 전공필수 과목에 의학기공학, 양생학, 본초학, 원전, 경혈학, 처방제형학, 상한론, 각가학설, 온병학, 사상의학, 간계내과학, 비계내과학, 폐계내과학, 신계내과학, 심계내과학, 침구학, 추나학 등 의학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 과목들이 즐비하고, 전공선택 과목에는 고의서독법, 동씨기혈론, 동의보감, 사암침법, 한방음악치료학, 동의수세보원갑오구본, 빈호맥진과8체질맥진, 도침요법, 면역약침학, 현대임상온병학, 공간척추도인안교학 등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과목들로 채워져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한의과 대학의 커리큘럼이 과학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고, 한의사가 의료 원리에 기초하여 교육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어질 정도이다.

③ 보건복지부 장관이 밝힌 한의대가 WDMS에 등재되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

보건복지부 장관이 두 번째로 밝힌 이유는 한의사가 되려면 한의과대학에서 전문 학위를 취득한 후, 의료 면허 국가시험에 통과하여 대한한국 정부가 발급하는 자격면허를 취득해야 한다는 점과 일반적으로 한의사는 대한한국의 의료 시스템에서 일차 의료(primary care)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대한한국의 의료 시스템에서 한의사는 환자를 진단하고, 약물을 처방하고, 치료를 제공하고, 출생 및 사망 증명서 등의 정식 의료 서류(legitimate medical documents)를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군의관이나 지역 보건소의 공중보건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유 역시 전혀 설득력이 없고, 허위 내용이 대부분이다. 한의사 면허를 국가가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세계의과대학명부에 포함시키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의과대학이 되려면 합당한 의학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지만 한의학 교육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가 면허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명부 등재가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떼쓰기에 불과하다. 

한국 의료시스템에서 한의사가 일차 의료에 종사한다는 표현도 완전히 잘못된 발언이다. 일차 의료에서 주로 담당하는 경증 질환(감기, 위장염 등)이나 만성 질환(고혈압, 당뇨병 등)의 경우 한의학적 치료법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검증된 바가 없고, 일부 질환은 한의학적 원리에서는 아예 생소한 질환들도 있다. 따라서 한의사는 일차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의학으로서의 역할만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한의사가 진단, 처방, 치료 제공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의학적 영역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고, 의과 영역에서의 진단, 처방, 치료 제공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마치 한의사가 의과 영역의 진단, 처방, 치료 제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의료인 면허체계를 부정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증명서 발급 자격에서도 출생 신고서의 경우는 한의사가 발급하는 경우가 전무한 수준인데, 이는 한의사가 출산을 담당할 역량이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한의사에게 출생신고서 발급 자격이 있다는 표현을 하게 되면, 마치 현재 한의사가 출산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을 왜곡시켜 보이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한의사가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를 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군의료나 지역 보건 의료 인력이 부족하여 이루어지는 고육책일 뿐 한의사를 의사와 동일시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 사실은 오히려 부실한 군의료와 지역보건의료를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보건복지부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④ 보건복지부 장관이 밝힌 한의대가 WDMS에 등재되어야 하는 세 번째 이유

보건복지부 장관이 밝힌 세 번째 이유는 중국의 한의대라고 할 수 있는 중의대는 WDMS에 등재가 되어 있는데, 커리큘럼 및 국가 자격면허 시스템이 유사한 한의대가 WDMS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서신이 발송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2019년 1월에 중의대도 WDMS에서 퇴출 되었다. 한의학이 중의학을 그 뿌리로 생각하기도 하고, 많은 중의학 연구들을 한의사들이 거부감 없이 적용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중의대의 WDMS 퇴출은 한의학의 국제적인 입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의대 뿐만 아니라 중의대의 WDMS 퇴출은 합당한 기준을 충족하는 현대의학이 아니면 의학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국제적인 공감대가 확고히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우리나라는 한의학 퇴출은커녕 혈세까지 지원해가면서 한의학을 지원하고 있으나,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서 유럽 등에서는 한의학과 유사한 대체의학을 금지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과 공감대도 읽어내지 못하고, 중의대도 퇴출될 것이라는 예측도 하지 못한 채, 한 국가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중의대도 명부에 등재되어 있는데 왜 우리는 안 해주냐는 식의 생떼를 쓰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며, 국격을 하락시키는 부끄러운 일이다.

⑤ 보건복지부 장관이 밝힌 한의대가 WDMS에 등재되어야 하는 네 번째 이유

보건복지부 장관이 밝힌 네 번째 이유는 한의학 교수들과 연구원들이 증거에 입각한 의학의 원칙(based on the principle of evidence-based medicine)에 따라 과학 및 의학 학술지에 적극적으로 논문을 발표해 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한의학 교수와 연구자들이 증거에 입각한 의학 원칙에 근거해서 연구 논문을 쓰고 있다는 발언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부가 연구용역을 의뢰하여 시행하는 국책 사업의 경우에도 한의학 교수나 연구자들은 증거에 입각한 의학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특정 치료법이나 약물의 효과 및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작위이중맹검 임상시험이 행해져야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최근 김 모 교수가 국책 연구로 진행했던 한방난임 연구의 경우를 보면, 한방치료가 난임에 대한 효과와 안전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작위이중맹검 임상시험을 했어야 하지만 관찰연구 수준에 머물렀다. 이 연구는 연구 디자인도 엉망이었지만 드러난 결과들이 한방난임 치료의 유효성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음에도, 연구자의 의도에 맞게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런데 도저히 연구라고 인정할 수 없는 수준의 연구를 하고도 국책 연구비는 수령하였다. 국가가 관리하는 연구가 이런 수준이면 개별 대학이나 개인이 진행하는 연구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결국 한의학 교수와 연구자들이 증거에 입각한 의학 원칙에 따라서 연구 논문을 게재해오고 있다는 말은 사실을 왜곡한 주장일 뿐이다.

⑥ 한의계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서신의 내용

보건복지부 장관 서신의 말미에는 “WFME가 관리하는 WDMS에 한의과 대학이 다시 등재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대한한의사협회를 비롯한 한의학계는 WFME의 전문가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의과 대학의 커리큘럼을 검토하고, WFME가 권장하는 표준과 절차에 따라 한의과 대학 교육을 개선할 수 있도록 조언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서신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WFME 전문가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의대 교육을 검토하고 조언해주기를 기다리는 주체가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대한한의사협회와 한의학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WFME에 전달한 것이 아니라, 한의계의 요구와 입장을 외교문서로 전달한 것이다. 이는 보건복지부의 노골적인 한방 감싸기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3. 한의계가 한의대를 WDMS에 등재시키고자 하는 숨겨진 목적과 이를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친한방 정책의 문제

2016년 12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미주지역 한방 의료기관 진출 전략 개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는 한의사들의 미주지역 진출을 위한 중장기적인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는 한국 한의사가 대한민국 의료체계에서 physician 자격을 갖춘 doctoral level의 의료인임을 미국에서도 인정받아야 함.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중의사들처럼 한국의 한의사들도 보건복지부 발행 영문면허증에서 MD로 표기되어야 하고, 세계의학교육기관목록(WDMS)에 한국의 한의대가 모두 등재되어 한의대 교육이 physician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임이 국제적으로 증명되어야 함. 한의대 6년 교육과정 중 Bio Medicine 관련 학점시수 및 병원 임상실습 시간 등으로 이를 인정받을 필요가 있음. 또한 한국 한의대 졸업과 한의사면허증 취득 후 대한민국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한의사 일반의, 공중보건의사, 군의관 등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법적인 근거로 내세울 수 있음. 지금처럼 WDMS에 한의대가 등재되어 있지 않으면, 미국 내 어떠한 기관에서도 한국의 한의사 인력에 대해 제대로 된 의학 관련 교육을 받은 직군으로 인정해 줄 방법이 없음. 한국 한의사가 공식적으로 미국 의학 연구계 및 임상 의료계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한의사 영문면허증의 개정과 한국 한의대의 WDMS 등재가 한국 정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만 하는 선결과제라 사료됨.”

보고서에 나와 있는 미주지역 진출을 위한 중장기 과제의 내용을 보면, 2018년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WFME에 보냈던 서신의 내용과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한의사들이 미주 지역 진출을 위해서는 WDMS에 한의대가 등재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기에 정부가 무리하게 나선 것이라 볼 수 있다. 한의사들이 미주 지역 진출을 바라는 이유는 미주지역에서 의사 또는 대체의학의사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또 다른 이유로는 연구원 등으로 단기 연수를 다녀와도 마치 의학자가 된 것처럼 스펙 세탁이 가능해진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의사들이 MD 명칭을 사용하고, WDMS에 한의대를 등재시키려는 진정한 목적은 아마도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현재 한방의 의과 영역 침탈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의사들의 최대 약점은 한방이 과학적인 근거가 부실하다는 점과 한의사가 의사에 비해서 실력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MD 명칭 사용과 한의대의 WDMS 등재는 한의사가 의사와 동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는 한의사의 의과 영역 침탈의 명분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장관 서신에서 한의사가 일차 의료를 담당하고 있고, 처방 및 치료를 하는 등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적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보건복지부도 한방의 의과 영역 침탈을 노골적으로 지원할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 결론

WDMS에서 한의대와 중의대의 퇴출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의학의 기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서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어야 하고, 그 결과가 인류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기준과 공감대는 선진국이라면 누구나 따르는 것인데, 이에 역행하는 나라가 대표적으로 중국과 대한민국이다.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과학적으로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학문은 보건 의료의 영역에서 모두 퇴출시켜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치료가 국민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어떠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면서 중국은 큰 혼란에 빠졌고, 이 병에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포는 더욱 커졌다. 그런데 중국에서 개나리나 몇 가지 풀 등이 주 성분으로 되어 있는 ‘상황롄’이라는 중의학에서 쓰는 약품이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약품이 품절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약품은 항바이러스제가 아니고 바이러스 질환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검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약 복용에도 불구하고 질병이 빠르게 확산된 것으로 보아 실제로 효과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효과도 없는 약을 치료제로 믿은 환자들은 끔찍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의학이나 한의학에서는 야생동물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 역시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오히려 야생동물들은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에서 질병 확산의 주범인 숙주로 생각되고 있다.

결국 신종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과학적인 근거 없는 치료법이 일반 국민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는 중의학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일부 한의사들은 신종코로나 치료와 예방에 한약이 도움 된다는 어이없는 광고나 하고 있고, 한의사협회장은 이번 사태에서 한의사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해놓고는 의심환자는 한의원에 오지 말고 보건소에 먼저 연락하라는 포스터를 제작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의료에 있어서 국제적인 흐름을 따라야 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인정하지 않는 한의학의 세계화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고, 국민 건강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당장 한의학의 과학적인 검증을 통한 퇴출 작업을 시작해도 모자를 시점에 보건복지부 장관이란 사람이 국내 의료제도의 근간인 의료이원화를 부정하면서까지 허위 사실에 근거한 서신을 세계의학교육협회에 보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보건복지부의 이러한 행태는 대한민국 행정부처로서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행동이며, 특히 허위 사실에 근거한 외교 문서 작성은 범죄 행위이자 국제적인 외교 결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에 본 회는 정부에 허위 사실에 근거하여 외교문서를 작성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즉각 파면 및 처벌하고, 부작용만 양산하면서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친한방 정책을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본 회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서는 허위 공문서 작성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2020년 2월 17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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