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4 (월)

  • 구름많음동두천 5.6℃
  • 구름많음강릉 4.9℃
  • 흐림서울 7.7℃
  • 흐림대전 9.4℃
  • 흐림대구 10.7℃
  • 흐림울산 9.6℃
  • 흐림광주 10.2℃
  • 흐림부산 10.8℃
  • 흐림고창 8.4℃
  • 제주 9.9℃
  • 흐림강화 2.9℃
  • 흐림보은 8.2℃
  • 흐림금산 8.3℃
  • 흐림강진군 9.7℃
  • 흐림경주시 8.7℃
  • 흐림거제 10.2℃
기상청 제공

칼럼

의대정원 확대 정책의 문제점과 올바른 의료 인력 수급 정책의 방향

2020년 7월 29일



적정 의사 수의 기준은 무엇이고, 대한민국의 의사 수는 정말로 부족한가?

의대정원 확대나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항상 대한민국의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의사 수가 부족하니까 의사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인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정말로 의사가 부족한 국가인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의사 수 부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내세우는 명분은 OECD 보건의료 통계에서 각국의 의사 수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가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2019년 OECD 보건의료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3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장 적은 의사 수에도 불구하고, 기대수명, 영아사망률, 자살을 제외한 연령표준화 사망률 등에서 OECD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의료이용 관련 지표들에서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절대적인 의사 수에서도 일본(2.4명), 미국(2.6명), 캐나다(2.7명) 등의 국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적은 의사 수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최고의 의료 수준과 의료 이용률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적정한 의사 수의 기준은 무엇일까? 의사 수가 적음에도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과 이용률이 높은 이유는 높은 전문의 비율, 최고 수준의 의사 노동 시간, 낮은 수가, 높은 의료 접근성, 많은 외래 및 입원 환자 수 등 복합적인 원인들에 의한 결과이다. 의사 및 국민들의 전문의 선호 현상이 강한 이유로 개원의의 경우에도 전문의의 비중이 월등히 높고, 낮은 수가로 인해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병의원을 방문하여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병의원 입장에서는 낮은 수가로 인해 보다 많은 환자를 보아야 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의사 및 보건의료 인력들의 노동 시간 및 강도의 증가로 이어졌다. 또한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 지역에 밀집되어 살고 있고, 이로 인해 도시지역에 병의원의 수가 집중되어 의료 접근성이 매우 높다.

결국 현재 대한민국의 낮은 의사 수와 높은 의료 수준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과 수가 수준에 의해서 국민들과 의료계가 적응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의료 시스템과 수가 체계의 변화 없이 의사 수만 늘리는 정책은 반드시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사 및 의료 인력 수급 정책을 세울 때는 외국과의 절대적인 숫자 비교보다는 자국 의료 시스템 안에서 가장 적절한 인력 수급 계획을 세워야 한다. 결국 적정한 의사 수의 기준은 한 국가의 의료 시스템, 문화, 인종, 인구구조, 환경, 국민소득 수준, 의료재정 규모, 의료 인프라 및 접근성, 지리적 여건 등의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의 의료 수준을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 및 의료 인력 규모를 적정 수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의사 수를 늘리는 만큼 의료 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의사 배출 수를 조절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의사 부족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의사 공급 과잉을 걱정해야 한다. 2013년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김양균 교수가 발표한 ‘향후 10년간 의사인력 공급의 적정 수준’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빠르면 2023년, 늦어도 2025~2026년에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었고, 의대정원을 늘리면 2025년부터는 의사 수가 초과 공급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2017년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된 2019년 OECD 통계를 보아도 이러한 예측은 설득력이 높다. 절대적인 의사 수는 가장 적지만 이전과 비교하여 평균에 가까워져 가고 있고, 수가 수준의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상의료비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현상은 빠른 고령화, 의료 이용량 증가 등과 함께 의사 공급 과잉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의사, 간호사 및 의료 인력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의료 시스템과 수가 체계, 의료 정책 등의 문제로 인해 적절한 인력 분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필수 의료보다 미용〮성형 분야를 선호하는 의사가 많아지고, 저임금 및 고강도 노동을 견디지 못해 숙련된 간호사들이 조기 은퇴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의료 인력들이 대도시로만 몰리는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는 것이 의대 및 간호대 정원을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의사 및 의료 인력들의 적정 수준에 대한 올바른 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채 OECD 통계만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대한민국 보건의료 시스템의 문제들에 대해서 아무런 이해도 없이 추진되는 의대정원 확대 정책과 같은 무분별한 의료 인력 수급 정책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실패로 인해서 발생하는 피해는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국민들과 의료계가 입게 되고, 정책을 추진한 정부와 정치인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2020년 7월 29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