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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및기관

[평화재단 현안진단] 볼턴 회고록이 드러낸 한반도 평화의 도전과 기회

제 238 호 2020년 7월 18일 (토)



2020년 6월 본격화한 북한의 새로운 길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삼아 6월 4일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담화로부터 시작된 북한의 대남공세는 통신연락선의 전면차단에 이어 16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정점에 달했다. 그 뒤 북한군 총참모부가 4개 군사행동계획을 발표했으나 김정은 위원장 주재로 진행된 6월 23일 당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의 결정으로 중단되었다. 


 북한은 7월 7일 스티븐 비건 미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한을 전후해 대미공세로 전환했다. 7월 4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담화를 내고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으며, 7일 권정근 미국담당 국장도 "다시 한번 명백히 하는데 우리는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7월 10일에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연내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최근 북한의 대남 및 대미공세는 우발적으로 볼 수 없으며,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예고한 ‘새로운 길’ 전략의 일환일 개연성이 있다. 대남 및 대미 공세의 의도는 파국이 아니라 협상 재개를 통한 목표 달성이다. 북한은 남북관계의 대적관계 전환을 호언하면서도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한국 정부의 행동과 실천을 요구했으며, 남북관계의 완전한 종식을 선언하지는 않았다. 


 7월 10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대미 담화는 거칠었던 대남 담화와 달리 매우 ‘온순’했으며,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생각”이라는 단서를 달아 곳곳에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특히 담화 마지막 부분의 미국 “독립절 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는 데 대하여 위원장 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는 언급은 경우에 따라 자신이 대미 특사로 나설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전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 볼턴 회고록의 교훈


 6월 23일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그것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을 공식 출간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내막을 공개했다. 볼턴의 회고록은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탕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모두를 비난하는 논조를 견지하고 있다. 볼턴 회고록의 일방적 주장에 대한 논란을 떠나 두 가지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첫째, 볼턴은 ‘애걸’, ‘조현병’ 등과 같은 감정적 언어들을 사용해 자기 중심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객관성의 문제가 있다. 볼턴은 자신이 경험한 리비아 비핵화 모델에 대한 일방적 확신을 토대로 성격이 상이한 북한 비핵화의 다양한 가능성과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있다. 두 번째는 진정성의 여부이다. 볼턴 회고록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폭로 내용이 진정성이 있다면 그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볼턴은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해임당한 뒤 발간한 회고록에서 그것을 폭로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북·미 비핵화 외교를 한국 정부의 창조물이라고 비난했지만, 거꾸로 이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우리의 지난한 노력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2018년 초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견인해 냄으로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문을 열었으며,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 공동선언의 ‘완전한 비핵화’ 문구를 사전조율했다. 9.19 평양 남북 공동선언에 영변 핵단지의 영구 폐기 문구를 명문화함으로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견인한 것도 한국이었다. 역사적인 6.30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도 트럼프 대통령을 서울로 초청한 문 대통령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볼턴의 회고록은 북·미 비핵화 협상 결렬의 중요한 요인이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의 이견, 그리고 미국 비핵화 협상팀 내의 불협화음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여러 정황상 김 위원장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확신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분열된 자신의 비핵화 협상팀의 문제를 내재한 불확실성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임했고 이는 결국 협상 결렬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6.30 판문점 북·미 회동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김 제1부부장은 7월 10일 담화에서 판문점 회동에 대해 ‘조미수뇌회담’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미국 국무부는 공식적으로 ‘회담’이 아닌 ‘회동’으로 규정해 격을 낮췄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기대와 달리 당시 판문점으로 정상회담에 걸맞는 의제를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념할 것은 북한 비핵화라는 복합적인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북·미 양측의 이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상회담 주선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확고한 사전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난 2년간 한국 정부의 고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가시적 결과 도출이 미진한 이유를 곱씹을 일이다. 



자력갱생은 시간의 담보물이 될 수 없다


 7월 10일 담화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은 자신들이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미국 대선 이후를 내다보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미국 대선 이후로 비핵화 협상을 미루는 것은 북한에 유리하지 않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승리할 경우 새로운 북·미 비핵화 협상팀을 꾸리는 것은 빨라야 내년 중반이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의 민주당은 공화당과 달리 집권 이후 이전 정권이 체결한 평화협정이나 외교관계를 수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북한이 김 위원장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비핵화 협상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유리한 이유이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주재한 6월 8일 정치국 회의에서 드러났듯이 북한 정권의 핵심부인 평양마저 살림집과 먹는 물, 그리고 남새(채소) 공급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유엔 산하 5개 국제기구는 13일(현지시간) ‘세계식량안보와 영양상태’ 보고서에서 2016-19년간 북한 전체인구 47.6%가 영양부족에 시달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48.2%의 아이티에 이어 세계 2위이며, 2015-17년을 대상으로 한 지난해 조사보다 4.2% 증가한 수치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료수급 및 농촌지원 차질, 그리고 물 부족 등 금년 상반기의 다양한 상황을 감안할 경우 올가을 북한 식량난 악화는 자명하다.


 북한 경제의 미래도 전망이 극히 어둡다. 김정은 위원장은 기약 없는 자력갱생과 정면돌파전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선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북한 정권 수립 이래 최악의 고난의 행군기를 경험한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시발점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으로 상징되는 남북협력의 시대를 열어 경제 회생의 돌파구를 찾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


 볼턴은 회고록에서 “모든 외교적 판당고(fandango, 스페인 춤)는 한국의 창작품이었고, 이는 김정은이나 우리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의제에 더 연관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볼턴은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에만 집중하는 미국과 달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는 물론이거니와 항구적 평화 상태의 달성, 공존공영의 남북관계 형성, 그리고 궁극적인 통일이 한국의 전략 목표이며, 이를 주도하는 한반도 운전자 역할은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2018년 초 시동이 걸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경주했을 때 여타의 주체들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었다.


 북·미가 서로 새로운 판짜기와 상대의 손짓을 기다리는 지금이 지난 2년여간 드러난 문제점과 교훈을 바탕으로 진정한 대화의 장을 다시 열어야 할 때다. 비핵화 대화 재개 및 연내 북·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가 관건인데, 이를 위해서는 문 대통령이 탑다운 방식의 정상외교를 다시 재개하도록 나서야 한다. 당면한 과제는 남북관계의 신뢰회복이며, 이를 위해서 전열을 정비한 통일외교안보라인을 가동해 대북 특사파견을 다시 검토하고 빠른 시일 내에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할 것이다. 


 최근 동향에서 긍정적인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를 필요로 하며, 북·미 양측 모두 협상에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7월 10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대미 담화는 사실상 김 위원장의 대화 재개의사로 해석될 소지가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성과 있는 북·미 정상회담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기회를 살리기 위해 8월 하순으로 예정된 동맹 20-Ⅱ 한미 군사연습을 잠정 중단함으로써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군사적 대비와 전시작전권 전환에 따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경우 충분한 명분이 있으며, 한미 군사연습이 북한이 말하는 적대시정책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북한에 보내는 대화 재개의 시그널이 될 수 있다. 



다시 창의력을 발휘해 ‘판당고’ 춤을 출 때다 


 연내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실질적인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7월 10일 담화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은 비핵화 상응조치로 제재완화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따라서 이런 점을 감안한 대안이 필요하다.


 여러 대안 중의 하나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볼턴의 방해로 무산된 ‘북·미 종전선언’ 추진이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 양국 간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 대신 관계개선의 상징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4.27 판문점과 9.19 평양 정상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은 이미 사실상의 종전선언에 합의한 바다. 북·미 양자 종전선언만 취해진다면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켜 나가는데 충분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북·미 양측이 비핵화 행동과 함께 종전선언을 포함한 상응조치를 통해 초기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은 이미 영변 핵 단지의 폐기 의사를 공표한 만큼 이를 중심으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창의적 조합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영변 핵 단지 폐기가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단계의 진입을 의미한다는 문 대통령의 아이디어를 ‘조현병적’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영변 핵 단지의 영구폐기는 불가역적이지만 대북제재는 해제해도 언제든지 다시 부과가 가능한 가역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영변 폐기 대 대북제재 일부 해제’는 미국에 불리할 이유가 전혀 없는 방안이다. 핵 전문가를 자처하는 볼턴이 이를 간과한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다만, 이미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만큼 새로운 협상안이 모색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영변 핵 단지가 핵 프로그램에서 핵 물질 추출단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영변 이외 지역의 고농축 우라늄(HEU)시설까지 비핵화 대상으로 내놓을 경우 미국도 추가적인 상응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 물질 시설 전체가 폐기될 경우 북한 핵 프로그램의 지속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제약되기 때문이다. 이는 역대 어느 미 행정부도 달성하지 못한 일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인도적 차원에서 부분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 행보도 가속화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7월 14일 남측 인터넷 매체의 논평을 간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이인영, 임종석 두 사람에게 거는 기대도 많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기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에 당장 절실한 대규모의 식량지원과 보건의료 협력은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북한 내 현지조사와 설계의 본격화도 대북제재 국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코로나19 사태 진정과 연계해 이미 마련된 남북 관광 협력방안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볼턴의 회고록에서 입증되었듯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입구 형성과정에서 일본의 불필요한 간섭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의사를 표명할 경우 일본의 긍정적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인 대일 외교와 김 위원장에 대한 설득 역시 한국 정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집권여당은 국회의 과반 이상을 충분히 확보한 만큼 포용과 협치를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 공동선언을 비롯한 기존 남북 합의에 대해 국회에서 비준 동의를 받을 경우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정책적 추진력이 확보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보정치 역량의 발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외교안보팀은 진정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판당고 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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