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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성명서



정부는 실효성도 없고 혈세만 낭비하는 공공의대 설립시도를 중단하고, 의료서비스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 

지난 10월 1일 보건복지부는 언론을 통해서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서 정부는 의료서비스의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눈의 띄는 것은 2022년 3월 개교를 목표로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한다는 부분이었다. 국립공공의대 설립의 문제는 올해 초 서남의대 폐교가 결정된 이후에 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정치인들과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공론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의료계에서는 공공의대 설립이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에 이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반발하였다. 하지만 의료계의 지적과 반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준비를 해왔으며, 이번 10월 1일 보건복지부의 발표를 통해 이를 공식화 하였고, 이에 앞서 9월 21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을 대표로 공공의대 설립의 근거 마련을 위해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도 발의되었다.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수도권 및 대도시 지역과 타 지역간의 의료서비스 불균형이 심하고, 의료 인력의 편중도 심하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각 지역에서 공공보건의료에 종사할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부실한 교육, 불필요한 혈세 낭비 등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파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본 회)는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고, 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부실의대 발생 원인에 대한 철저한 고찰 없이는 공공의대도 부실화 될 가능성이 높다.

의대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합당한 시설이나 체계적인 교육과정, 자격 있는 충분한 수의 교수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더해서 점점 강화되는 실습 교육의 학습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부속 병원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부의 발표를 보면 부실 교육이 되풀이될 우려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일단 현재까지 학생 교육을 전담한 적이 없는 국립중앙의료원을 교육병원으로 하고, 각 지역에 있는 국립병원과 지방의료원을 활용하여 공공의료에 특화된 교육을 한다고 되어 있다. 학생교육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국림중앙의료원이 교육병원으로서의 수준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지도 의심스럽고, 공공의료 특화된 교육이 어떠한 것인지 구체화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지방의료원과 국립병원에서 교육을 시키는 것은 병원 견학 수준의 수박 겉핥기식 교육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 의과대학에서 부족하거나 목표로 두지 않는 지역사회 임상 실습 및 공공보건의료 분야의 교육이 강화된 과정도 운영하겠다고 하면서 몇 가지 교육과정 예시를 들었으나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보건복지부가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에서 발표한 교육과정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① 3학년까지 표준교육과정으로 운영하고 4학년에 트랙제(공중보건, 공공의료, 국제보건)를 운영하여 학생 선택 기회 제공, 
② 지역사회 또는 공공보건의료 전문가와 학생 간 1:1 매칭 지도, 
③ 몰입형 지역사회 조기노출 프로그램 운영(스웨덴 제네바대학 사례 참고), 
④ 지방의료원, 보건소, 의료취약지, 일차의료 실습 의무화(장기통합임상실습과정), 
⑤ 통일의료, 국제보건분야에 진출할 핵심자원 양성 프로그램 운영, 
⑥ MD(Doctor of Medicine)-MPH(Master of Public Health) 과정을 의무화하여 졸업 후 보건행정과 의료정책의 전문가로서 역할 수행

보건복지부의 교육과정 예시 발표를 보면 의학 교육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의과대학이 다른 대학과 비교하여 2년 더 많은 6년의 교육 기간을 가지는 이유는 4년으로는 충분한 의학지식 습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의과대학들은 기존 의학과에 편성되었던 기초 의학 과목들의 상당수를 의예과 시기부터 교육시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국립공공의료대학원과 같이 4년제를 유지하는 의학전문대학원들의 경우에는 부실한 의학교육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4년 동안 매우 빡빡한 학사일정을 유지한다. 4년 동안 기존의 의학 교육만 하기에도 빠듯한 일정에 위에서 언급한 예시들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래도 만약 위 예시의 교육들을 한다면 기존 의학교육과 공공의료 관련 교육 모두 부실한 교육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를 양성해내는 의대는 인프라를 제대로 구성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의대 설립 문제는 신중히 결정해야 하고, 교육 과정의 부실화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를 보면 서남의대가 왜 부실의대로 지목되고, 폐교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부실의대 발생의 원인 분석과 고찰 없이 단순히 학교의 이름만 바꾸는 수준의 의대 설립이라면 이는 또 다른 부실의대를 양산하는 것일 뿐이다.


2. 단순히 의사 수 증원만으로는 지역 의료서비스 향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번 정부 발표에서 ‘공공보건의료 인력 양성 및 역량 제고’ 방안으로 언급된 것은 공공의대 설립과 공중보건장학제도 추진으로, 두 방안 다 의사 인력 확보를 염두에 둔 정책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의 제공은 의사 한 명만 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의료는 의사뿐만이 아니라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및 진료지원 인력 등 다양한 인력들에 의해 제공된다. 지역의 의료서비스가 대도시와 격차가 벌어지게 된 이유에는 의사 인력의 대도시 편중 보다는 오히려 의사 이외 다른 보건의료 인력의 대도시 편중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의사보다 간호사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정부는 의사 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병원에 간호사, 간호조무사 및 다른 진료 지원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의사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지역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해서 정부가 우선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바로 지역 보건 의료 인력의 확보 및 양성이다.

대도시 이외의 지역에 인력들이 부족한 이유는 이미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열악한 근무여건 및 생활 인프라, 대도시와 별 차이 없는 임금 수준 등이 지역 의료기관 종사를 기피하는 대표적인 이유이다. 생활 인프라를 단번에 개선시킬 수는 없지만 근무 여건과 임금 수준은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개선시킬 수 있다. 열악한 근무여건과 임금수준의 이유는 지역 의료기관들이 경영난으로 인해 병원 인프라 개선과 임금 인상의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 의료기관들의 경영난 해소를 위한 수가 인상과 세제 혜택 등이 필요하고, 이를 통한 수익 창출이 직원 복지와 임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러한 보다 우선적이고 시급한 보건의료인력 확보에 대한 대책은 빠진 채 공공의대 등 의사 인력 확보 대책만 마련하는 것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3. 지역 의료 서비스 격차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그 어떤 대책도 실효성이 없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저수가 시스템 때문에 많은 환자를 보아야 의료기관의 운영 및 유지가 가능하기에 의료기관들은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생존하기 어렵다. 의료 취약지역은 인구수가 현저히 낮아 적절한 의료 수요가 창출되기 어렵고, 취약한 도로 사정 및 대중 교통 이용의 불편함 때문에 그나마 있는 의료기관들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진다. 결국 의료 취약지 문제의 핵심에는 저수가와 열악한 인프라가 자리 잡고 있다. 지역 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저수가 체계를 개선해서 자발적으로 민간의료기관들이 대도시 이외의 지역에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정부가 언급한 의료취약지역의 건강보험 수가 가산체계 도입은 약간의 인센티브 수준이라면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전체적인 수가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수준에서 취약 지역의 수가 가산이 더해지는 정도가 되어야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하여도 의료 공백이 있는 지역이 있다면 그에 해당하는 곳만 국가가 책임져 주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재정 안정적이며 서비스 만족도나 의료의 질 측면에서도 좋은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따라서 이미 90% 이상의 의료 서비스를 민간이 제공하고 있는 현 구조에서 공공의료를 대도시 이외의 지역에 더 확대한다고 해서 의료 서비스 이용의 편이성 향상이나 의료의 질 향상을 담보할 수는 없고, 이를 공공의료 확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포퓰리즘 정책일 뿐이다.


4.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의 명분으로 의사 수 부족을 이야기 하는 것은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일 뿐이다.

지난 3월 공공의대 설립 관련 토론회 자리에 패널로 참석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은 공공의대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대비해서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65% 수준으로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우리나라는 의사 수 증가 속도가 빠르지만 아직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통계를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을 인용하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발표된 OECD 통계를 보면 우리 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3명으로 낮은 것으로 나오지만, 미국(2.6명)이나 일본(2.4명)과 비교해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국민 1인당 연간 의사진찰건수는 17건으로 OECD 국가 중에 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7.6%로 평균보다 낮았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국민의 보건의료지표(OECD Health at a Glance 2013)'를 보면 2000년 대비 2011년 활동 의사 수는 56.9% 증가했고, 이는 같은 기간 동안에 OECD 평균 증가율의 3배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또한, 2013년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김양균 교수가 발표한 '향후 10년간 의사인력 공급의 적정수준'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빠르면 2023년, 늦어도 2025~2026년 사이에 OECD 국가 평균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됐고, 의대 정원을 늘리면 2025년부터는 초과 공급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지금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근시안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발언이다. 의사 수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의료 행위량의 증가 및 전체 의료비 증가로 이루어진다. 의사 수 증가를 의사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의사들의 수익 감소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바로 전체 의료비 증가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부실화와 국민 부담 증가 때문이다. 그래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적정한 의사 수급 정책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하지 못하고 의료 취약지에 의사가 부족하니 의사를 늘리자고 하는 것은 의료 정책에 대한 무능함과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실효성도 없이 국민 부담 증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의료 취약지의 의료서비스 향상에 의지가 있다면 이미 과잉인 도시의 의사와 보건의료 인력들이 자발적으로 의료 취약지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은 앞서 말했듯이 저수가 개선, 의료 취약지 의료기관 지원책 마련, 교통 인프라 개선 등이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도 부실 교육 논란이 있는 의대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부실 교육이 시정되지 않으면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서 의대는 설립부터 운영, 발전 등의 치밀하고 장기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개설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합리적이고 적정한 의사 및 보건의료 인력 수급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본 회는 실효성도 없고, 혈세만 낭비할 가능성이 높은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고, 정부에 지역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바이다.


                                2018년 10월 8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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