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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병원현장 의사에 대한 괴롭힘의 실태와 해결 방안

김재현(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 위원장)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병원집단 문화에서 발생하는 의료인 폭력사태, 성추행, 인사전횡, 해고 



 ‘습관적인 두부 구타로 고막 파열’, ‘수술 기구를 이용한 구타’, ‘정강이 20차례 구타’, ‘회식 후 길거리 구타’, ‘주먹으로 두부 구타’ 등은 수련병원에서 일어난 비상식적이고도 부당한 사건이다. 전공의 폭력 문화는 의료계의 오랜 병폐다. 그 병폐가 관행으로 이어져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2017년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전공의의 71.2%가 언어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3%는 ‘폭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병원 내 폭력이 한동안 의료계에서 묵인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국립대병원 겸직교원(교수) 및 전공의 징계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최근까지 성범죄와 폭행 등으로 징계 받은 겸직 교직원과 전공의는 총 313명이었다. 이 가운데 254명(81.1%)은 공무원법상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 훈계, 주의, 경고 조치만 받았다. 경징계는 41명(13.1%), 중징계는 18명(5.8%)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징계 수위인 파면은 한 건도 없었다. 이렇게 병원 내에서 암묵적으로 허용된 폭력으로 위계적 병원 집단문화는 더욱더 폐쇄적으로 되었으며 경영진 의사에 의한 인사전횡과 의사 해고까지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공공기관 병원인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시행한 임상시험의 안전성 문제로 피험자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린 이유로 해당 의사를 인사평가 저성과자로 분류하여 부당해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해당 병원 원장은 안전성 및 피험자의 이익에 대해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임상시험에 대한 수십억 원의 국가 연구비를 수주 하였고, 몇몇 가까운 병원 운영진과 함께 인사위원회,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문제를 제기한 의사를 해고한 것이다. 위계적 폐쇄적 병원 집단문화이기에 이러한 일들이 손쉽게 가능한 것이다.
        

환자와 공공의료보다는 이윤중심의 비정상적인 경영방식 심각 

이러한 위계와 이윤중심의 경영마인드로 운영되고 있는 곳은 대부분의 병원에서 비슷하다. 이런 곳에서 민주적인 운영과 인권 존중은 당연히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공공병원인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산하 중앙보훈병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2016년 새로 부임한 병원장이 병원 의사들에 대한 인사전횡과 수익창출에 대한 압박으로 보훈병원 의사들에 대한 착취가 심각한 수준이었음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었던 의료진들은 정상적인 진료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렸고,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수시로 사고가 발생하고, 폭언과 폭행이 이어지며 감염병에 환자들의 건강이 위협받는 일들도 벌어졌다. 실제 보훈병원 의사들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전문의 1인당 연간 입원환자는 서울대병원의 2.8배, 분당서울대병원의 3배인 2,683명에 달했다. 급기야 원장부임 후 2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원장의 인사전횡과 폭압적인 경영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던 의사 122명(149명중 82%)은 원장 불신임 투표를 진행하였고 투표자의 95%인 116명이 원장 불신임에 표를 던지는 일이 생겼다. 나라를 위해 피 흘리고 다친 국가유공자들에게 최선의 적정진료를 해야 할 보훈병원이 본래의 사명을 버리고 환자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실적을 올리라고 압박하는 기이하고 파행적인 진료가 강요된 것은 보훈병원의 존재 의미를 망각한 경영진의 비정상적인 행태다.

국민들이 내는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공공의료 중심병원인 일산병원에서도 병원장이 대학 동문 선배 의사의 감형 탄원서 작성을 거부한 봉직의사에 대해 부당한 전보 발령과 파면까지 시키는 일이 생겼다. 결국 소송을 통해 해고 무효가 되었지만 일산 병원의 봉직의사들은 병원장 눈 밖에 나면 정당한 사유도 없이 파면까지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병원 내 봉직의사들이 위계적 폐쇄적 병원집단 문화 속에서 고용불안과 수익창출에 착취당하며 겪는 괴로움들은 당사자들에게는 그 어느 폭력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환자들에게는 과잉 진료를 유발하고 고가 의료장비나 고비용 비정상적 진료로 인한 총체적인 국가적 의료자원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의료공급체계와 수가는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의료공급체계는 시장 경제에 내몰린 병원들의 외형적 대형화 경쟁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뒤틀려져 있다. OECD 국가와 비교하여도 급성기병상과 고가의료장비의 과잉공급, 그리고 지나치게 높은 외래진료 수진율과 과도한 의약품비 부담 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8.8개로 OECD 평균인 5.1개를 훌쩍 넘어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인구 100만명당 CT는 37.7대(OECD 평균 24.6대), MRI 수는 24.5대(OECD 평균 14.3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병원들은 마치 호텔이나 백화점처럼 겉모습은 화려하게 꾸미고 고가의 의료장비를 갖추어 놓고 광고까지 하는 등 환자를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하는 것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현실이다.  

이렇게 비효율적이며 재원 낭비인 대형화된 병원에서 환자 수와 검사 건 수 채우기에 급급한 의료환경은 의료현장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착취하고 있다. 경영진 의사들은  수익만을 추구하다보니 각종 인사전횡과 회유로 의사 길들이기에 더 몰두하며 공공병원도 정부기관으로부터 경영평가나 수익 적자에 대해 추궁당하지 않기 위해 공공의료를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현재의 의료수가제도 또한 문제다. 인력에 대한 적정 수가 보다는 고가의 장비를 이용한 검사 수가를 더 높이 책정하여 오히려 불필요한 검사를 자주 하게 하여 적자를 벌충하려는 병원이 많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의료수가에서 의료인들의 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며, 사람에 의한 의료서비스가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저평가 되어 있다. 이러한 저평가는 병원에서 의료인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핵심 사유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형병원 일수록 간호사나 의사들이 혹사당하며 수익창출에 착취당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러한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2016년 한겨레에서 분석한 6개 국립병원의 의료인들의 일자리의 질에 대한 결과이다.




병원이나 관련 정부기관들은 의료인들이 직장 내 노동환경이 이렇게 열악함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저 단순히 신고센터나 가해자 처벌에 그친다면 언젠가 폭발할 시한폭탄을 가림막으로 막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이다. 


의사노조는 왜 생기게 되었으며 그 역할은 무엇인가?
 
2017년 9월 부산의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최초의 병원 의사노조가 탄생하였다. 부당한 임상시험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병원측이 해당 의사를 인사고과 저평가로 징계하고 해고까지 하자 12명의 의사들이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에 가입하여 분회를 조직한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로 법적 교섭권을 가지고 병원과 단체교섭을 하는 의사노조가 등장하여 의사들의 정당한 진료권 보장 및 고용안정,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산하 중앙보훈병원에서도 2018년 8월 7일 원장 등 보직의사들을 제외한 140여명의 의사들 중 70%가 넘는 108명이 가입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중앙보훈병원 의사노조는 상급기관을 두지 않고 병원 내 의사들로만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이들은 국가유공자에게 최선의 적정진료를 해야 할 보훈병원이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환자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실적을 올리라고 압박하는 기이하고 파행적인 진료가 강요되는 병원 현실과 경영진에 맞서기 위해 노조를 설립하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의사노조의 등장은 병원 본연의 환자 치료보다는 수익 창출을 위해 의사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병원 현실에서 예견되어 왔던 것이다. 노동자로도 의사로도 살기 어려운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원은 정책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악화되고 있는 수익을 벌충하기 위해 의사들을 쥐어짜고 있다고 하지만 의사들은 고용조건과 사회 분위기로 인해 토조차 달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억눌렸던 피해의식이 분출되었으며 의사로서의 소신과 신념을 주장하고자 한다. 앞으로는 대형 대학병원에도 의사노조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의사의 권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형적으로 뒤틀려진 의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의료현장의 주체이며 노동자인 의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의사들이 병원의 압박이 있으면 일부는 고소, 고발로 대처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다른 병원으로 이직을 선택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직을 한다고 하여도 그곳에서도 같은 압박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제 뭉치고 있다. 그리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다른 병원의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병원현장을 직장으로 가지고 있는 의료인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신고센터 운영, 가해지 처벌이라는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임시처방만 내놓지 말고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심평원과 보험공단과 함께 협력하여 의료인들의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고 인권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는 의료환경 개선책을 시급히 만들 것을 의사노조는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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