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균형 있게 생성돼야 신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골수 기능이 떨어져 이들 세포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면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희귀 혈액질환이 발생한다.
재생불량성빈혈은 방사선, 특정 약제, 벤젠 같은 화학물질 노출, 바이러스 감염,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원인으로 조혈모세포가 손상되면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골수 조직이 지방으로 대체되고,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모두 줄어드는 범혈구 감소증을 일으킨다. 하지만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특발성 사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성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재생불량성빈혈은 초기에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아 단순한 빈혈이나 피로로 오인하기 쉽다”며 “무기력, 호흡곤란, 잦은 출혈이나 멍, 반복적인 감염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전문 진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단은 말초혈액검사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동시에 감소하는 양상이 관찰될 때 의심할 수 있고, 골수검사를 통해 확진한다. 환자의 골수는 정상보다 세포충실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지방조직으로 치환된 소견을 보인다. 감별을 위해 염색체 검사, 바이러스 검사, 자가면역질환 평가 등도 병행된다.
치료는 환자의 나이와 질환의 중증도, 조직적합성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혈구 수치가 심하게 떨어진 환자에게는 적혈구나 혈소판 수혈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백혈구가 부족해 감염 위험이 크다면 예방적 항생제 투여가 필요할 수 있고, 백혈구 주입술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조혈모세포이식이다. 특히 50세 이하 환자에서 가족이나 타인 공여자와 조직적합항원이 일치한다면 이식이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성공할 경우 1개월 내 정상적인 조혈 기능 회복이 가능하고, 재발 위험도 낮다. 이식이 어려운 경우에는 항흉선세포글로불린, 사이클로스포린, 스테로이드 등 면역억제치료를 통해 장기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재생불량성빈혈로 진단되면 감염증의 예방과 생활관리 역시 치료만큼이나 중요하다. 중증 환자는 호중구 감소로 인해 세균 감염이나 출혈 위험이 크기 때문에 개인위생 관리, 구강 위생 유지, 손 씻기 같은 기본적인 습관이 필수다. 또한 사람이 많은 장소나 감염 위험이 높은 환경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타박상과 출혈을 막기 위해 격한 운동이나 날카로운 물건 사용을 조심해야 하고, 치과 치료나 예방접종도 반드시 전문의 상담 후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김성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재생불량성빈혈은 희귀질환이지만 조기 진단과 치료 접근에 따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며 “정기검진으로 혈액 상태를 확인하고, 작은 증상에도 의료진과 상의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환자의 삶의 질을 지키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