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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성명서]

2019년 7월 18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산모 사망 산부인과 의사의 구속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


2016년 5월 경북 안동에서, 분만을 하던 산모가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였다.
성명 발표에 앞서, 사망한 산모와 유족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뜻을 모아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한다. 당시의 가슴 아픈 사건을 재차 언급하게 되는 실례에 유족들에게 송구를 표한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했던 사고에 도의적, 민사적 책임이 아닌, 법정 구속이라는 강력한 형사 처벌을 내린 대구지방법원의 결정은 분명 비상식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결정이 혹여나 우리나라 의료진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법정의 비뚤어진 시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지 심히 우려스럽다. 의료인이란 언제든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라고 전제하는 그 왜곡된 시선이 이번 결정을 기울였던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명한 판결을 통해, 이 같은 의료계의 공분과 오해를 불식시켜 줄것을 대법원에 강력히 촉구한다.

3년전의 사고는 안타깝고도 가슴 아픈 비극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사건은 [은폐형 태반조기박리]라는 매우 드물고도 예측하기 힘든 출혈로 인한 것이었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직접, 이 현상은 경험있는 산부인과 전문의라고 하더라도 진단과 처치가 무척 어려움을 재판부에 알린 바 있다. 그러나 재심 재판부는 이를 무시했다. 활력징후를 체크해서 초음파 검사를 했더라면 충분히 이를 저지할 수 있을것이라 판단하며 금고 8개월의 형과 함께 해당 산부인과 의사를 법정구속했다. 출혈이 일상처럼 난무하는 분만현장의 전문가들이 모두 입을 모아 어려운 일이라 판단한 것을 재판부에서는 간단히 예방 가능한 것이라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시민들을 태운 버스기사가 졸음운전을 해서 인명사고를 냈다면 해당 기사에게 형사적 처벌을 가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꽝꽝 언 빙판 길에서 바퀴에 체인까지 감았음에도 버스가 미끄러져 사고가 났다면 어떻겠는가. 주의 태만에 의한 과실과 예측할 수 없는 사고는 분명다르다. 의료현장의 사고 역시 결코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누구도 100% 사고 없는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다루는 우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의 의료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선과 선의를 다해 환자들을 진료하지만, 자살이나 자해, 타해 같은 사고들은 늘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심지어 입원 병동에서조차 자살사고는 100%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정신건강의학과 교과서에 실려있다. 하물며 위험한 분만이나 수술현장에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현장에서조차 가능한 모든 사고를 최대한 배제하고 환자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료인이 소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피할 수 없는 일부의 사고조차 의료인에게 형사 재판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못하다. 이번 재판부의 결정은 오히려 비극의 책임을 국가가 개인에게 떠밀고자 하는 왜곡된 시선이 드러났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환자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진료할 책임이 의료인에게 있다면 국가의 책임은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에 있다.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대한 의료사고의 모든 가능성을 줄이고 안전한 의료환경을 구축하도록 의료인과 공조해야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에서는, 그러한 책임에 대한 통감은커녕 10년이 넘도록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진료에 헌신한 의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재판부의 모습 밖에는 볼 수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분만 가능한 병원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분만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아기를 받지 않는 산부인과마저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병의원 가운데 단 한 번도 아기를 받지 않은 산부인과가 25%인 것으로 나타났다.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4곳 중 1 곳은 아기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지속되는 저출산으로 출생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뿐만 아니라, 분만에 따르는 사고로 인한 위험 부담 대비 분만실을 유지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월 20건의 분만을 하면 원가만 따져 평균 월 3000만 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한다. 결국 작은 분만 병의원은 분만실을 폐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응급 분만을 24시간 대기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인력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는 분명 산부인과 의료진의 희생과 선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의료인은 재판부가 바라보는 바와 같은 '언제든 사고를 낼지 모르는 일로 돈을 버는 잠재적 범죄자'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제약한 수없이 많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 진료에 헌신하는 선의의 의료인이 더욱 많다는 것을 우리나라 분만실의 의료진들이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와 같이 비상식적인 결정으로 의료진을 내모는 행태가 지속된다면, 얼마 남지 않은 분만실의 유지가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러울 수 밖에 없다. 재판부의 책임 회피가 오히려 국민들의 안전한 출산을 위협하게 될지 모른다. 이러한 잘못된 판례는 산모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의료 소송의 고액 배상을 위한 형사 입건과 법정 구속으로만 이어질 우려가 클 수 밖에 없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대한민국 의료인의 일원으로써,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대구지방법원 제3형사부의 선고를 강력히 규탄한다. 안전한 의료환경 속에서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진료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한 합리적 결정을 재판부가 재고하기를 촉구한다. 


2019년 7월 18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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