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협의회 기자회견문

2021.12.10 01:40:31

2021년 12월 9일

'우리는 국민을 살리고 싶습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일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장 여한솔입니다. 지난 11월 시행된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 이후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진자는 누구나 예상하였듯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몇몇 언론을 통해 현재 코로나로 인한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 받는 현장이 공개되고 있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언론에 노출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초기에 코로나 감염 의심 환자를 마주하는 응급실 및 코로나 확진 환자를 치료하는 병동은 가히 아수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처참한 붕괴를 우리 전공의들은 현장에서 목도하고 있습니다. 치료할 수 없어 하루에도 십수 명씩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서 제때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사망하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 경기권에는 중증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상은 이미 한 자리도 남아있지 않음에도, 보건 당국은 병상이 아직도 여유가 있다고 호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 환자가 폭증하여 확진환자의 응급실 내 체류시간이 100시간이 넘는 것은 기본, 300시간이 넘어 응급실에서 격리해제 하고 퇴원시킨 환자도 있었습니다.

음압 시설을 유지해야 하는 격리구역에는 코로나 감염 진단을 받았음에도, 전담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119 구급대를 통해 새로이 들어오는 중증의 환자들을 수용하지 못하여 몇 안되는 격리실이 있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달라고 말하는 실정입니다. 심근경색, 의식 저하, 뇌출혈, 뇌경색 등 빠르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119구급차를 통해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위중증 환자는 일주일째 날마다 700명씩 쏟아지고 있으며, 병상확보를 위해 정부는 뒤늦게 이를 민간병원에 떠넘기고 있습니다.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 아니 이러한 상황에서 그 어떠한 시스템도 가동되지 않는 것에 우리는 강하게 분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은 이러한 비극을 묵묵히 감당하며 현 대한민국 사회의 위기 대응에 적극 협조하고 있습니다. 비단 전공의뿐만 아닙니다. 119 구급대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공의와 함께 묵묵히 땀을 흘려 가면서도 코로나 현장을 지키는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곳곳의 취약지에 가뭄의 단비같이 투입되는 공중보건의사 선생님들 또한 이 대한민국이 코로나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휩쓸리지 않도록 의료의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를 꽉 깨물고 버티고 있음에도,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시작된 지 약 2년여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보건의료 위기 대응 체계는 처참하기 그지없습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의 고위 공무원은 지난 11월 1일, 이른바 워드 코로나를 선언하면서 "일 확진자 수가 1만 명대에 이르더라도 비상 계획을 발동하지 않을 수 있다, 의료체계가 견딜 수 있는 한계로 본다"고 언급했습니다. 과연, 현장은 어떠한가요.


정부는 물론, 이재명 캠프, 윤석열 캠프 등 거대 정당의 대선 캠프를 포함한 여러 사회 지도층은 겉으론 관심 두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위중증, 사망 환자들이 폭증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대책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아수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권 유지, 정권교체라는 욕심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 날마다 수십 명씩 죽어 나가는 이 거대한 비극에는 침묵하고, 진절머리 나는 정치싸움만 하는 실정입니다. 정작 오늘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 주변의 가족이 건강함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가 고통에 신음하든, 병들어 죽어 나가든 상관없이 처참한 비극을 뒤로하고, 정치적 쟁론에만 매몰되어 서로 헐뜯고 비난하며 살아가는 모습입니까.

이제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재택격리하고 있는 환자들의 심정지, 의식저하 상황을 119 구급대를 통해 마주합니다. 코로나 감염 확진을 받고도 집에서 마냥 병원이송만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고통을 우리는 Level D 방호복을 입으며 날마다 경험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코로나 19 감염을 대처할 능력이 고갈되었음을 입증하는 비극들로 가득 찹니다.

얼마 전 겪은 일화입니다. 한 가족 3명 모두가 코로나 감염으로 한 집에서 격리된 채로 있었습니다.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가야 할 리스트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 그렇게 24시간 하염없이 겁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의 가장인 60대가 극심한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배우자가 119에 신고하였고, 병원 도착 당시 그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습니다. 저희 모든 의료진이 한 환자에게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하며 필요한 약물들을 주입하였음에도, 끝내 그 분은 병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망하였습니다. 얼마 뒤 유가족인 딸에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려주자 응급실 땅바닥에 엎드려  목놓아 울던 그 상황을 저는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까지 너무나도 건강했던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이 세계 최고의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의료진의 손길을 기다리는 중에 사망하였습니다.

참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심지어 경증으로 보건소를 통해 재택격리 통보를 받은 뒤  자가격리 기간을 거쳤던 60대 남성분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정상 생활하여도 된다고  격리해제 문자를 받은 날, 배우자가 찾아가 보니 호흡곤란이 심하여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3분 만에 인공호흡기를 넣는 비극도 벌어집니다.

감염병 관련한 국가적 위기상황일 경우, 맞닥뜨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여 인력 대책 및 병상확보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수순임에도, 일상회복 계획에서 우리 의료계가 처한 현장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병상 포화, 의료체계 마비가 발생하였고 보건당국은 이러한 시나리오 속에서 의료현장에 대한 대처 방안이 없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K 방역이라며 공적을 자위하며 언론 앞에 온갖 생색은 내면서, 정작  위기의 상황이 봉착했을 때에 그 혼란의 책임은 의료현장 일선으로 떠미는 보건당국을 우리는 강하게 규탄합니다.

쏟아지는 확진 환자들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 어떠한 시스템을 이용하여 이들을 전담병원으로 이송할 것인지, 또 코로나 감염 가능성이 떨어지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비감염성의 중환자들이 119구급차량에 실려 오갈 데 없이 떠도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그 어느 가이드라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잘 적용되는 것이었다면 앞서 말했던 코로나 확진 환자가 응급실 내에서 수십 시간 수백 시간 체류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재택격리하고 있는 환자들이 의식 저하로, 심정지로 응급실을 통해 이송되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안타까운 현장을 맞이할 때마다, 언론을 통해 ‘K-방역’ 치적만 홍보하는 행태에 우리는 보건당국과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자들에 대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위정자들에게 묻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코로나 감염으로 신음하는 환자들의 곁에 있어 주었습니까. 사망한 가족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이러한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 개선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였습니까.

더이상 젊은 의료진의 피땀을 갈아 넣으며 ‘덕분에’ 따위의 말 한마디로 우리의 희생을 욕보이지 마십시오. 우리는 위정자들의 다분히 정치적인 행보에 좌우하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우리 젊은 의사들은 국민들, 환자들 옆을 지키겠습니다. 또한 간호사, 공중보건의사, 119, 더 나아가 여러 시민단체와도 연대하여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위시한 대한민국 정부부처, 여당 야당의 국회의원, 더 나아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나와 주신 이재명, 윤석열 후보 등 대한민국을 움직일 힘을 가진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쓰러져가는 환자들을,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들을 포기하지 말아 주십시오. 생과 사의 현장에서 고통에 허덕이는 환자들과 끝까지 함께하는 우리 젊은 의사들의 간곡한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저희 의료인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각 부처에서 머리를 맞댐이 필요하다면, 우리 전공의협의회도 언제든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 news@md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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