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월 둘째 주 월요일은 ‘세계 뇌전증의 날’이다. 국제뇌전증협회(IBE)와 국제뇌전증퇴치연맹(ILAE)은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 환자들이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날을 제정했다. 과거 ‘간질’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지고 오해받던 질환이었지만, 이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통해 충분히 조절 가능한 신경계 질환으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과도한 흥분이 발생해 반복적인 발작이 나타나는 만성질환이다. 별다른 유발 요인이 없어도 발작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단 한 번의 발작만으로 진단하지는 않는다. 증상은 전신 경련뿐 아니라 잠시 멍해지거나 특정 부위만 떨리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최윤호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치매, 뇌졸중과 함께 3대 신경계 질환 중 하나지만 여전히 불치병이나 정신질환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며 “뇌전증은 숨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과 치료로 충분히 일상생활이 가능한 질환”이라고 말했다.
뇌전증은 주로 소아청소년기에 발생률이 높지만, 최근에는 고령 인구 증가와 함께 노년층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선천적인 질환으로만 인식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뇌염, 수막염 후유증, 뇌졸중, 뇌종양, 외상성 뇌손상 등 후천적 원인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발병 원인을 특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구체적인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다.
발작 형태는 뇌 전체에서 시작되는 전신 발작과 특정 부위에서 시작되는 국소 발작으로 나뉜다. 전신 발작은 의식을 잃고 전신 경련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인지하기 쉽다. 반면 국소 발작은 한쪽 팔다리나 얼굴만 떨리거나, 잠시 멍해지고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등 미묘한 증상으로 나타나 진단이 늦어지기도 한다.
진단은 자세한 환자의 병력 청취와 발작 양상 관찰로 이뤄진다. 이후 뇌파검사와 뇌 MRI 등을 통해 뇌의 전기적 이상 신호와 구조적 원인을 확인한다. 정확한 진단이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만큼, 의심 증상이 반복된다면 전문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1차 치료는 항뇌전증 약물치료다. 발작이 두 차례 이상 반복되면 약물치료를 시작한다. 환자의 약 70%는 꾸준한 약물 복용만으로도 발작이 잘 조절돼 학업과 직장생활 등 일상 영위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다양한 작용기전의 신약이 개발돼 부작용은 줄이고 치료 효과는 높아지고 있다.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발작이 지속되는 난치성 뇌전증의 경우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추가적인 비디오뇌파검사와 정밀 영상검사를 통해 발작이 시작되는 병소를 확인한 뒤, 병소 절제술이나 신경자극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미주신경자극술, 뇌심부자극술, 반응성 뇌자극술, 케톤생성식이요법 등 환자 상태에 맞춘 다양한 치료법이 활용되고 있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최근 수술기법과 신경자극치료가 발전하면서 과거보다 훨씬 많은 환자가 발작 조절과 삶의 질 향상이 가능해졌다”며 “약물로 조절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적절한 진단을 통해 치료 가능성을 평가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뇌전증 환자는 치료와 함께 생활습관 관리도 필수적이다. 수면 부족, 과도한 음주, 특정 약물 복용 등은 발작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시기에는 운전, 높은 곳에서의 작업, 단독 수영 등 위험한 상황을 피해야 한다.
뇌전증은 여전히 사회적 편견이 남아 있는 질환이지만, 의학적 관점에서 충분히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다. 조기 진단, 꾸준한 치료, 올바른 정보가 환자와 가족의 불안을 줄이고 삶의 질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신경세포의 일시적 이상흥분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이를 조절하는 치료법은 이미 충분히 발전해 있다”며 “증상이 의심될 때 지체하지 말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환자의 미래를 바꾸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