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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성명서


미비한 대리처방 의료법 개정안, 그대로는 수용 불가
정신질환을 앓는 본인과 가족에게 또 다른 고통만 안겨 

지난 9월 심의 가결된 의료법 개정안에는 대리처방에 대한 명확한 요건 및 처벌 규정이 신설되어 의료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대리처방에 대한 별도근거와 대상을 한정한 이번 법안(주호영 의원안, 김상희 의원안)에는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불가능하거나 장기간 동일 처방인 경우 ▲그 밖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로 한정했고, 대상은 환자가족으로 제한했다.

그런데 대리처방이 약의 도용, 특별히 졸피뎀이나 마약류 등을 빼돌리는 위험성에 대해 각계각층의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대리처방의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를 삭제하는 한편 ▲의사 등이 해당 환자 및 의약품에 대한 안전성을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 대리처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정•보완했다.

게다가 처벌규정이 신설되었는데, 의사 등이 대리처방의 교부 요건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보호자 등이 대리처방의 수령 요건을 위반한 경우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어서 환자 보호자 확인을 위한 대리처방시 신분증이나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제출하여 확인토록 명문화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하였다.

최근 우리나라 의료의 전반적 분위기와 방향은 그간 꾸준히 증진해온 신체건강 외에도 상대적으로 간과되었던 정신건강 문제의 중요성을 새롭게 재인식하는 추세다. 그 이면에는 지속되는 높은 자살률과 우울, 불안 등 정신증상의 사회전반에 걸친 확산이 존재하며, 출산율 감소 및 충동공격성 범죄사건의 증가 등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에 정부는 국민정신건강증진 및 각종 정신질환의 치료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우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단체도 이에 적극 협력, 폭넓고 심도있는 소통을 이어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위 법안에 반드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좀더 신중한 고민과 노력을 반영함으로써 국민정신건강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

우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려와 함께 두 가지 수정•보완을 절실히 요구한다.

첫째로 신체가 건강하고 거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결국 병원에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정신건강 문제가 꽤 많다. 한 사례로 은둔형 외톨이는 대개 병식이 없을 뿐 아니라 치료에 대한 의지도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하여 병원을 오지 못한다. 또한 기이한 사고 및 간헐적 공격성을 불규칙하게 보이는 특정 정신질환은 병식이 없고 심지어 투약을 완강히 거부하여 결국 보호자는 병원을 가자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걱정과 불안만 가중되는 고통을 겪는다. 최근 보도된 강력 범죄 중 정신질환이 관련된 경우, 대리처방이라는 부득이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적절한 약물치료를 가능케 한다면 범죄에 따른 희생과 피해를 크게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위 법안 속 대리처방 가능의 사유로 1. 환자의 의식이 없는 경우 2. 환자의 거동이 불가능하고 동일한 상병(傷病)에 대하여 장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루어지는 경우 3. 의사 등이 해당 환자 및 의약품에 대한 안전성을 인정하는 경우 외에 「정신질환으로 자타해의 위험성이 매우 높거나, 병식 결여로 치료를 거부하여 본인, 가족 등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를 추가해야 함을 적극 호소한다.

둘째로 정신건강 문제의 발생 및 악화에, 직계 보호자가 직간접으로 연관된 경우, 환자가 위의 법안에 한정된 보호자만으로 대리처방의 대상을 한정하면 일부 정신질환의 치료에 오히려 큰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 가령 학대 및 방임 트라우마의 어린시절 성장과정을 지낸 경우는 불가피하게 보호자와의 격리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일부에서는 친척, 지인 등을 치료적으로 활용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사례도 있다. 실제로 친구 혹은 멘토의 돌봄과 지지 속에 인격이 잘 보존되고 증상도 호전되는 경우를 임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이에 그 여지를 남겨둬야 함은 환자 및 국민 정신건강증진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더욱이 65세 이상 인구 중 혼자 거주하는 독거노인의 비율이 20퍼센트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의 노령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대리처방의 주체를 보호자 범주로 한정하고 처벌 조항을 둔 것은 국민정신건강 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호 차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대리처방이 가능한 주체로서 「다만 정신질환의 경우 환자가 지정한 사람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함께 방문하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확인을 득한 경우는 보호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규정도 추가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을 간절히 호소한다.

향후 의료법을 비롯, 어떠한 법안이 개정 및 신설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건강에 위해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세심한 정신건강의학적 수정•보완을 완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정신건강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회장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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